일상 / / 2025. 11. 19. 21:09

서리풀 오후의 실내악

 

 

 

2025년 11월 19일, 서초문화재단에서 열린 ‘월간객석과 함께 하는 서리풀 오후의 실내악’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평일 오후 시간이어서 그런지 공연장 분위기는 차분했고, 객석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 처음 방문한 공연이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밀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첼리스트 문태국 연주자와 피아니스트 노예진 연주자를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두 연주자의 호흡과 표정, 움직임 하나하나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실내악만의 매력이었고, 이날 공연의 소중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공연은 월간 객석 편집장님의 간결하고 세련된 진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공연 흐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작곡가와 곡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셨습니다.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공연 전체의 분위기를 차분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음악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와 같은 느낌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프로그램은 바흐의 곡이었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언제나 명료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데, 문태국 연주자는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톤으로 바흐 특유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 첼로의 음색은 마치 공간 전체를 따뜻하게 채우는 듯했고, 활 끝이 떨리는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음악을 깊이 모르더라도, 연주자가 음악과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감정의 흐름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실내악 공연의 진정한 매력이라 생각됩니다.

 

피아니스트 노예진 연주자의 음색 또한 바흐의 곡에서 단정하게 빛났습니다. 선율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첼로의 소리를 부드럽게 받쳐 주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적인 중심을 첼로에 두면서도, 피아노 자체의 선율미를 잃지 않는 균형감이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연주자는 서로에게 기댔다가도 자연스럽게 균형을 조절하는 모습이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인 브람스의 곡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브람스 특유의 깊고 넓은 감정의 폭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문태국 연주자의 첼로는 바흐에서의 절제된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한층 더 풍부하고 인간적인 울림으로 관객의 감정을 두드렸습니다.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속삭이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주는 브람스의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듯했습니다. 특히 저음역에서 울리는 첼로의 깊은 울림은 마음속으로 바로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노예진 연주자의 피아노는 브람스의 강렬함 속에서도 결코 무겁지 않고, 섬세하게 감정의 결을 따라갔습니다. 피아노가 첼로를 밀어붙이는 듯한 강렬한 순간도 있었지만, 두 악기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조화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가며 성장하는 음악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두 연주자의 호흡이 자연스럽고 깊었습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슈만의 곡들이었습니다. 슈만의 음악은 감정의 변화가 유독 많고 섬세한데, 이 복잡한 흐름을 두 연주자가 서로에게 기대며 아름답게 풀어냈습니다. 잔잔함 속에 숨어 있는 열정, 음악이 갑자기 확장되는 듯한 순간, 그리고 다시 스르륵 가라앉는 여운까지… 공연장을 가득 채운 감정의 파도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깊었습니다. 연주자들의 표정에서도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읽혔고,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공연장 규모가 크지 않아서 연주자들과 거의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첼로의 가장 작은 떨림과 피아노의 여린 건반 소리까지 모두 살아 있는 듯 들렸습니다. 실내악이 가진 ‘친밀함’이라는 특징이 공연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훨씬 더 높여주었습니다. 대형 공연장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가까움’이 이 공연의 큰 매력이었습니다.

 

문태국 연주자는 말 그대로 음악으로 말하는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할 때의 표정, 음악과 함께 움직이는 몸,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까지도 하나의 음악적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호흡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감동이었습니다.

 

노예진 연주자의 연주는 또 다른 방식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피아노의 흐름이 첼로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음악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공연을 진행한 월간객석 편집장님의 품격 있는 사회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공연에 앞서 들려주신 짧고 중요한 정보들은 관객들이 음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특정 지식을 강조하기보다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라 부담이 전혀 없었고, 공연 전 분위기를 차분하게 정돈해 주었습니다. 편안하면서도 전문적인 사회가 공연의 격을 높여준 느낌이었습니다.

 

전체 공연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도 실내악 공연이 이렇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설명 없이도 음악 자체가 마음속에 바로 스며들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 악기의 자연스러운 울림은 다른 어떤 공연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었습니다. 음악을 몰라도, 악기 구조를 몰라도, 그저 눈앞의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음악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저에게 작은 휴식이자 큰 기쁨이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음악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시간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했습니다. 훌륭한 연주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열정이 관객들에게도 진심으로 전달되는 자리였습니다. 실내악을 자주 접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이런 공연이라면 누구든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음에도 서초문화재단과 월간 객석이 함께하는 공연이 있다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습니다. 음악이 주는 위로와 감동,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느끼는 생생한 울림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앞으로의 일상에도 좋은 힘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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