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인제가옥 방문기 – 북촌의 시간을 걷다
2025년 11월 18일, 맑은 가을날의 관람 기록
맑고 서늘한 가을 공기가 기분 좋게 스며들던 11월 18일, 저는 백인제가옥을 다녀왔습니다. 낙엽이 대부분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계절이었지만, 오히려 고즈넉한 한옥의 선과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해설 시간이 있어서 미리 오전 11시 2회 차 일정으로 예약을 한 뒤 방문했고, 예약팀들과 함께 내부로 입장해 해설사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더욱 깊이 있는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백인제가옥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실 만한 내용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백인제가옥의 탄생 – 북촌 한복판에 세워진 근현대 한옥
백인제가옥은 1913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입니다. 많은 분들이 북촌의 한옥이라고 하면 조선 후기의 전통 양식만을 떠올리지만, 백인제가옥은 전통 한옥의 특징과 근대기의 신문물을 함께 담고 있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지어진 시기는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 상류층이나 자산가들이 서양식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한옥의 기본 구조를 유지한 ‘근대 한옥’을 많이 지었습니다. 백인제가옥 또한 그런 시대적 변화가 반영된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무엇보다 이 집은 북촌에서 가장 넓은 규모의 민가 중 하나로 꼽힙니다. 대지 면적만 해도 상당히 넓고, 대문채–사랑채–안채–별채–하인 공간까지 전체적인 배치가 매우 체계적입니다. 이처럼 ‘부농이 살던 집’이 아니라 정치, 경제, 학계를 아우르던 고위층 지식인 가문이 살았던 집이라는 점이 백인제가옥의 위상을 설명해 줍니다.
■ ‘백인제’라는 이름이 왜 붙었을까?
현재 우리가 ‘백인제가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곳을 한때 소유했던 의사 백인제 선생의 이름에서 비롯됩니다. 백인제 선생은 한국 외과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크게 활동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백인제 선생이 처음부터 지은 집이 아닙니다. 집의 소유 구조는 시대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 1913년 – 첫 건립
한옥은 **한성 재력가였던 한상룡(조선귀족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짐)**이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1930년대 – 민영휘 가문 소유
이후 조선 말기 거부(巨富)로 불렸던 민영휘 가문이 소유하게 됩니다. 북촌 일대의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했던 대표적 친일 자본가로, 당시 북촌의 여러 대저택이 민영휘 가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1940년대 – 백인제 선생 가문이 매입
해방을 앞둔 1940년대 초, 백인제 선생이 이 집을 매입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후 백인제 선생의 후손들이 집을 오랫동안 보존했고, 2009년에 서울시에 기증하여 현재는 시민이 관람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즉, 한옥 한 채의 소유 변화만 봐도
대한제국→일제강점기→해방→근현대 한국사회
이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는 셈입니다.
■ 백인제가옥의 건축적 특징 – 전통과 근대의 공존
한옥 애호가분들께서 좋아하실 만한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된 전통 배치
사랑채는 외부 손님을 맞이하고 남성 공간으로 활용되던 곳이고, 안채는 가족이 생활하는 사적 공간입니다. 백인제가옥은 이 두 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연결 동선을 고려해 지어져 있습니다.
2) ‘ㅁ자형’이 아닌 열린 구조
일반 전통 한옥이 ‘ㅁ자형’으로 폐쇄적인 구조라면, 백인제가옥은 ‘ㄱ자형’과 ‘ㄷ자형’을 조합한 보다 개방적인 형태입니다. 이는 근대기 한옥의 특징으로, 채광과 바람길을 고려한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근대식 요소의 도입
백인제가옥이 특별한 이유는 서양식 구조가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 유리창
- 복도식 연결 구조
- 일부 공간의 서양식 마감재
이런 점들이 한옥 특유의 목재 구조와 잘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4) 북촌에서 보기 드문 ‘규모’
대문채를 지나면 넓은 마당이 나오고, 사랑채–안채–별채가 층단처럼 이어져 북촌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채의 툇마루에 서면 북촌과 삼청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이 점은 많은 분들이 가장 감동받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 해설과 함께한 관람 – 공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다
저는 이날 11시 해설 팀으로 관람했는데, 해설을 들으며 걷는 경험이 훨씬 깊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예쁜 한옥’이 아니라, 한옥이 지어진 시대와 사람들의 삶, 집의 변화 과정이 자연스럽게 설명되어 훨씬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채의 툇마루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당시에는 이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도 신분과 계층에 따라 다른 길을 이용했다”
는 설명과 함께 듣게 되니 공간의 의미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또한 백인제가옥은 내부 곳곳의 방들이 실제 생활 흔적을 남겨둔 채 복원되어 있어, 마치 시간 속에 들어가 그 시대 사람과 마주한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 마무리 – 백인제가옥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백인제가옥을 걸으며 저는 한옥이 단순히 ‘전통 건축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생활방식·사회구조가 담긴 기록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맑은 가을날의 고즈넉한 한옥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알고 보니 더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북촌을 좋아하시는 분들, 한옥을 사랑하시는 분들께는 꼭 한 번 해설과 함께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동 가드닝 클래스 (0) | 2025.11.20 |
|---|---|
| 서리풀 오후의 실내악 (0) | 2025.11.19 |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특별기획 김인중 신부전 (0) | 2025.11.14 |
| 명동대성당 하반기 한낮음악회 (0) | 2025.11.13 |
| [경복궁] 문화해설사 투어 (0) | 2025.11.12 |

